부조 : 기수가 말의 움직임을 요구하기 위해 취하는 동작
Ona jedna tam została,
그녀는 홀로 그곳에 머무른다네
Jaskółeczka moja mała,
나의 작은 제비,
로자리아가 폭탄 선언을 했다.
“나, 대회에 나가고 싶지 않아.”
그리고 마리아는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말했잖아. 나 대회에 나가고 싶지 않아.”
마리아로서는 로자리아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얘가 드디어 질풍노도의 십 대 중반 시기를 겪고 있는 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로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표정을 하는지 알기 힘들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감정만 있을 뿐이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부스카비차를 타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
부스카비차, 로자가 몇 년 동안 호흡을 맞춰 오던 멋진 흑마. 마리아 역시 그 녀석을 익히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3년 전, 그리고 그보다 더 전. 몇 번이나 말의 등에 오른 것은 다른 로자였으니까. 그 로자의 이름은 마리아 리소프스카. 우리, ‘로자’들은 결코 그 자리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었지만, 번개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흑마와 각설탕 찾기 게임을 하며 오랫동안 콧잔등을 쓰다듬고는 했다. 그 녀석도 헷갈려하긴 했지만 결코 우리가 각각 누구인지는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로자와 마리. 빌어먹을 숫자 놀이가 둘로 나뉘어버렸을 뿐이지, 원래는 하나였으므로- 체향도 같으니(다만 밴 향기가 다르다. 집의 포근한 냄새와 삭막한 밖의 냄새-).
부스카비차는 오랫동안 ‘로자’와 함께 달려온 말이었다.
평생 기수를 꿈꾸던 로자였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마리아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리, 너는 나를 이해해 줄 거야, 응?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비웃지 않겠다고 약속해.”
넌 나를 이해해 줄 거지? 그렇게 말하는 로자는 곧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마리아는 잠시, 그들이 처음으로 이름을 바꾸고 삶을 공유한 날을 떠올렸다. 그 때의 상황은 지금과 반대였지. 그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로자와 마리, 두 악동은 그들이 꾸민 새로운 장난에 즐거워하며 화장실에서 옷을 바꿔입었다. 들키면 어쩌나, 혹시라도 계획이 꼬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 하지만 전부 기우였다. 완벽한 장난이었다. 수 년 간 반복되었던-
그 때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 이렇게 보통 아이로, 로자리아 리소프스카로 살아가고 싶지 않아. 이해해?”
언젠가는 이런 고민을 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난 더 이상 PNS에 갈 수 없어, 마리. 네가 없기 때문이지. 아주 옛날에, 넌 언제나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으로 산다고 했잖니. 나도 그래. 너와 인생을 공유한 건 최악의 선택이었어. 나도 너처럼 그렇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은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이다.
“마리. 나는 이능력자가 아냐. 그렇지만 난 보통 아이들과 다르잖아, 응…”
“이해하도록 말해, 짧게.”
“나, 로자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하나의 인생으로 굳어져가기 싫어.”
“미쳤구나? 넌 내가 아니야.”
마리아 리소프스카는 한숨을 쉬고 로자리아 리소프스카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아? 마리,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처음 옷을 바꿔 입자고 제안한 건 너잖아.”
‘로자리아’가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리아는 로자의 말이 원래 제가 해야 했을 말이라고 생각했다. 두 개의 삶을 산 것은 ‘로자’가 아니었다. ‘마리아’였다. 로자는 우연히, 그 빌어먹을 숫자 놀음에 휘말려 다른 정상 사회에 속한 아이들과는 다른 경험을 했을 뿐이다.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로자는 이능력자가 되고 싶었나? 아니면, 내가 되고 싶었나?
어느 쪽이라도. 혹은 둘 다 아니라면, 로자는 단지 다른 이들이 ‘정상 사회’라고 치부한 것에서 떨어져나가고 있었던 그 자신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았던, 그리고 내가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정과 경험, 그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그건 네 삶이기도 하지만, 내 삶이기도 해. 로자는 물기 어린 눈으로 마리아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난 로자리아이기도 하고, 마리아이기도 해. ‘마리아’.
“마리, 파푸샤가 그랬잖아. 부스카비차는 두 방향으로 달리고 싶었다고.”
이건 서로의 삶을 절반으로 나누어 공유한 결과였다. 틀에 부은 듯 똑같은 인형같은 두 아이- 마리아는 시선이 교환되던 그 찰나의 순간,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오랜 고전 SF, <아일랜드>에서 주인공이 겪은 지독한 딜레마와 같았다. 삶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존재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진 거라면- 갈라진 조각들은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조각, 로자와 마리. 로즈마리.
로자리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전했으나, 정해진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표정에 마리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뭘 해 주길 바래?”
“나 대신 대회에 나가 줘.”
*
삐익. 거슬리는 기계음이 마상 경기장을 울렸다. ‘로자리아’는 부스카비차의 윤기나는 검은 털을 쓰다듬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수 년간, ‘로자리아’가 입고 땀을 흘리며 뛰어다녔던 승마복으로 갈아입었다. 짧은 코트가 걸음걸이를 따라 신나게 흔들렸다. 부스카비차는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로자리아’를 맞았다. 로자리아라면 수십, 수백 번이고 달렸을 주로와 바람을 로자리아는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밟고 맞았다.
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냐, 그래. 나는 마리아지.”
부스카비차의 옆구리를 가볍게 찼다. 처음 말을 탄 날 느꼈던 환희는 더이상 없었다. 마리아는 로자리아를 연기했다. 난생 처음으로 대회에 나간 아마추어가 아닌, 수백 번을 말 위에서 뛰놀며 즐거워했을 어린 기수를.
말의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흥분한 듯 푸륵거리는 말을 다독이며 커브를 돌았다. 다음은 3단 장애물, 고삐를 당겼다. 뛰어, 부스카비차! 번개같이 날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부드럽게 호선을 긋는 부스카비차를 향해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엉덩이가 안장에서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마리아는 공중을 날고 있었다.
“로자, 잘한다!”
부모님이 ‘마리아’가 아닌 ‘로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마리아는 그들의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제 형제를 떠올렸다. 수영복을 입은 미니언이 그려진 군청색 티셔츠에 회색 청바지, 어린 날 안제이에게서 슬쩍했던 그 옷을 입고 ‘마리아’를 연기하고 있을 로자리아의 표정이 궁금했다.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자리가 네 자리일까, 아니면 이 자리가 네 자리일까?
[비월은 총 네 개가 더 남았어요. 22초 안에 들어오면 리소프스카가 현 1위를 차지합니다.]
이름을 걸고 주로에 오르고, 경기장에서 큰 소리로 제 이름이 연호되는 것을 듣는 일. 그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우리는 그때부터 이미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나’를 부정하며 등을 돌리는 것,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이미 ‘나’가 된 것을 거부하는 것- 그때부터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뛰어, 부스카비차.”
두 번째 비월. 부스카비차가 기둥 하나를 떨어뜨렸다. 곳곳에서 탄식이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달려.”
세 번째 비월, 다시 완벽하게 하늘을 날았다.
불완전한 경기, 불완전한 기수! 마리아는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능력자의 표식을 타고났다. 그러니 정상 사회에 속할 수 없다. 온전하게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이상한 자들의 사회에도 속할 수 없다. 나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문득,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졌다. 시리도록 맑은 고향의 하늘. 비를 내리기에는 터무니없이 적고, 그늘을 만들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조각구름을 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주로를 벗어나…….
[아……. 장애물을 연달아 떨어뜨리는군요.]
그 날, ‘로자리아 리소프스카’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A ja tutaj w obcej stronie
그리고 나는 여기, 이 타국 땅에 있어.
Dniem i nocą tęsknię do niej.
온종일 그 소녀가 그립다네.
끝내주는(이중적이로군!) 하루를 보내고, 오랜 친구의 잡화점으로 발을 향했다. 별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로자와의 이해할 수 없는 대화도, 로자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로자를 위로하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도 별로 그의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마리아는 그 순간 마리아인 동시에 로자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보고 싶었다. 파푸샤.
[Taishia]
-어제와 내일.
언젠가 롬인의 언어로 쓰인 가게의 이름을 설명하며, 파푸샤는 덧붙였다.
-집시들에게 어제와 내일은 같은 말이거든.
멋진 단어라고 생각했다. 공존할 수 없는 것, 서로 손도 닿아볼 수 없는 것들이 한 단어로 엮여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가!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에서는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 대화를 하고 있지?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으나, 상당히 좋지 못한 주제라는 것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고성이 들렸다. 컵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는 소리, 이어 가게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낯선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협박을 하는 듯, 어떤 단어에 강한 악센트를 넣어 소리를 쳤다. 마리아는 골목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구시가지의 고요한 골목을 낯선 소리가 가득 메웠다. 아니, 저 소리도 분명 크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마리에게 저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목소리는 요란하게 들렸다. 밤늦게 양고기 수프를 얻으러 찾아오는 주정뱅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아니었으니까.
“내 말 명심해요!”
쾅. 이윽고 문이 거칠게 열어젖히고 나온 신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가게 안을 향해 한번 더 고함을 질렀다. 파푸샤가 대꾸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으나, 귀를 후비는 노인은 분명 듣지 않고 있었으리라. 한숨을 쉬며 가게 주위를 둘러보던 노신사는 이윽고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첫 감상, 뭘 봐? 마리는 생각했으나,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작게 중얼거렸다.
“그 문은 당기는 거예요.”
솔직히, 왜 그 말을 꺼냈는진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한, 어린아이의 소심한 반항이라고 하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잠시 꼬마를 내려다보던 노인은 곧 굳은 얼굴로 반대 방향을 향해 떠나 버렸다. 빠르기도 해라. 마리는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파푸샤의 가게 문을 밀었다. 딸랑이는 방울소리는 오늘따라 날카롭게만 느껴졌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
“파푸샤, 있어요?”
가게 안 조그만 탁자 위에 걸터앉아 어김없이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는 친구를 보면서도, 굳이 한번 더 물어보았다.
“응.”
“아까 그 사람은 누구예요?”
“제르주, 우리 왕.”
마리는 그제서야 그 신사가 이따금씩 신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던 롬인 대표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파푸샤는 분명 그와 싸운 것이겠지. 마리아는 제 친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얼마 뒤면 다시 헤어지게 될 정든 얼굴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파리해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별 일 아니야.”
항상 이런 말이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같은 말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으니, 마리아는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그래봤자 꼬마가 얼마나 무섭겠느냐마는! 파푸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잠깐 얼굴에 띄웠다).
“다 들었어요, 싸우는 소리가 골목까지 들리던걸. 무언가의 대표와 싸워서 좋은 일이 없다는 건 나라도 안다구요.”
“……맹랑하기는.”
파푸샤는 작은 의자를 끌어 탁자 앞에 가져다두었다.
“그 난봉꾼들과 지내는 것을 그만두라더구나. 하다못해 그 이야기들을 글로 쓰는 것은 그만두라고.”
“왜요? 파푸샤는 롬인 친구도 없잖아요.”
“흐흐흐, 그런 말은 PA에서 배워 왔니?”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앉으라고 손짓했다.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놓인 코코아 통을 집어들어 세 스푼을 덜어내고, 뜨거운 우유를 부었다. 분명 레오카티야 리소프스카 씨가 보았다면 잔소리부터 했겠지. ‘성장기 아이가 한밤중에 코코아라니!’ 테이블에 앉아 병정 컵의 온기를 느끼며 가게를 둘러보던 마리아는 아주 미미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매일 오지 않았더라면 알아보지 못했겠지. 벽을 장식하고 있었던 수많은 종이들이 조금 줄어 있었다…….
“파푸샤, 여기 있던 시들은 어디 갔어요?”
“시가 아니라니까.”
“아무튼! 자수 손수건 옆에 붙어있던 거 있잖아요. 기억 없는 이들이 쓰는 첫 번째 이야기…….”
뭐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듯, 손가락을 세던 마리아를 조용히 보던 파푸샤는 입을 열었다.
“시간의 이름은 어제와 오늘.”
“맞아요, 그거!”
“신문에 실렸어. 몇 달 전에… 야기에우워 대학 교수가 가져갔거든. 마예프스키였나.”
“작가가 되셨어요?”
마리아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셈이지.”
파푸샤가 테이블 앞 큰 의자에 주저앉았다. 마리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축하를 대신했다. 그러나 파푸샤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감정이 ‘기쁨’이 아닌 ‘덤덤함’인 것은, 분명 그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온전히 기뻐할 수 없으니, 마리아는 침묵을 택했다.
긴 적막이 맴돌았다.
“ ……그것 때문이었어요?”
“그래.”
대답하더니, 파푸샤는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에 걸려 있던 깃털 모자를 머리에 쓰고, 한 발을 불량스레 탁자 위에 올렸다. 마리아는 그 모습이 조금 전 가게를 떠난 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파푸샤는 이내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바꾸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폴란드 상원에서 최근 민생치안특별법이 통과된 것을 아시지요? 이것이 확정되면 ‘풍속을 해치고 대중치안에 위협적인 이민자 및 무국적자’를 추방할 수 있어요. 브로니스와바! 당신이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것은 로마니 대표자로서 칭찬할 일입니다, 하지만-…….”
파푸샤가 마리의 의중을 알아내려는 듯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눈동자의 심지가 굳었다.
“당신의 글이 로마니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신병자들과 어울리고 거지들과 춤추는 내용이라니요! 이봐요, 당신의 글은 ‘해로운 집시’ 이미지를 새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압니까?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바퀴 빠진 마차마저 빼앗긴다면-”
“덜떨어진 가지오(*Gadzio: 롬어, 로마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자를 말한다.) 들과 놀지 말라는 거군요.”
“그래. 그래서 내가 뭐라고 말했게?”
음. 마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옆 가판대 구석에 놓인 구슬 목걸이를 목에 둘렀다. 파푸샤의 것과 같은 색으로, 예전에 자신이 만들다 만 것이었다. 걸쇠로 고정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집은 뒤, 어른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는 꽤나 우스웠지만,
“헛소리 말고 썩 꺼져요!”
꽤 괜찮게 들린 것은 연극부의 성과일지도 모른다.
“그래, 잘 아는구나.”
파푸샤가 허리를 젖혀 가며 웃었다. 곧, 머리에 쓰고 있던 깃털 모자도 다시 제자리에 걸어두고는 밟고 있던 탁자를 닦기 시작했다. 심각한 일은 아니었던 걸까? 어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재주는 없었으므로, 마리아는 그저 추측했다.
“그러면 앞으로 밤에 사람들 못 오게 할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그 사람들은 너 같은 사람들이야.”
“좋은 뜻이예요?”
“오지 마라 한다고 안 올 사람들이 아니란 거지.”
봐라, 벌써 왔구만. 파푸샤는 블라인드를 살짝 걷고, 밖에서 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주정뱅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포도주, 와인! 내게 와인을 줘-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마리는 킥킥 웃었다. 문 밖으로 안젤리카의 그림자가 보인다. 특유의 쇳소리같은 기침은 <CLOSED>라고 쓰인 간판을,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OPEN>으로 바꿔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레코드 플레이어 위에 판을 올렸다. 철 지난 가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파푸샤는 오래된 도자기 그릇에 양고기 수프를 덜었다. 소란스러웠던 저녁이 지나고, 다시 이전과 같은 밤이 펼쳐진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파티, 그리운 곳…….
마리는 문득,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 외에는 아무데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파푸샤의 뒷모습을 끌어안고 싶었다.
“있잖아요, 파푸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난 당신이 좋아요.”
정말로.
A jak umrę pochowajcie
만약 내가 죽으면 묻어주게,
Na zielonej Ukrainie
녹색의 우크라이나,
Przy kochanej mej dziewczynie
내 딸 옆에 말이야.
글: @rakk_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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